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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과 소승

김성룡
0 2,800 2016.09.0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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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과 소승   

 

대승(大乘)은 커다란(뛰어난) 승용물(乘用物: 가르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하야나의 번역어이며, 반대로 소승(小乘)은 조그마한(뒤떨어진) 승용물의 뜻인 산스크리트어 히나야나의 번역이다. 

 

불교는 고타마 붓다가 입적한 후 그 가르침의 전승(傳承)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 불교로부터 그 정리·해석을 위주로 하는 부파(部派) 불교로 발전했으나, 이러한 불교가 복잡한 이론으로써 자기 혼자만의 해탈(解脫)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르침이었음에 반대하여 서기전 1세기 무렵부터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구제를 이상으로 하고 대중 속에 적극적으로 작용하여 자리(自利)와 함께 이타(利他)를 설법하는 보살의 가르침이 차차 융성해졌다.

 

그리하여 이 실천의 뒷받침이 되는 《반야경(般若經)》·《법화경(法華經)》·《화엄경(華嚴經)》 등의 경(經)이나 《중론(中論)》·《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이 작성되었다. 그때 후자의 교도는 자기들의 가르침이 대승이라 자칭하고 전자를 소승이라 하여 경시했다. 대승 불교도 측에서 소승 불교라고 칭하는 상좌부 불교에 속하는 현재의 스리랑카 · 미얀마 · 태국의 불교도들은 결코 자신들의 가르침을 소승이라 하지 않는다. 중국 · 한국 · 일본 · 티베트에서는 대승 불교가 매우 발전했다.

 

인도에는 불교이전 흰두교가 있었다.

모든 인도인들은 득도를 목표로 반생을 출가하여 고행을 자처하는 것이 최상의 관습이었다.

그 중 석가도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석가는 자기 득도에만 머물지 않았고 대중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때와 장소에 따라 설한 내용이 팔만대장경이다. 만약 석가가 득도하여 그냥 자기만족에 안주했다면 오늘 날의 불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문명이 발달한 저 먼나라 영국이 쳐들어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인도의 도인 중 누구하나 독립에 도움이 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 깨어난 간디라는 성현이 있었다. 간디는 그 맑은 영성으로 자립을 실천하며 인도인을 깨닫게 함으로서 영국이 간디가 있는 한 지배가 불가능하다하여 인도에서 물러났고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간디의 70세 생일날 그 때 당대의 그 유명한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이 '간디가 그런 영성으로 육신을 쓰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은 인류의 영광이고 기적'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승과 소승은 관념적 말에 불과하다.

간디야말로 대승이라 해야 후세 사람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설명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도 원효대사나 그 외 많은 빼 놓을 수 없는 대승들이 있긴하지만 간디 같은 실천하는 영성의 소유자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필자 같은 촌부가 종교를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시 한번 이러한 내용을 환기시켜 젊은 바클회원에게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영성을 강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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