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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因果關係)

김성룡
0 501 2022.02.09 14:37

인과관계(因果關係)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天文地理)에 해박(該博)한 지식을 갖고 있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주역(周易)에도 통달해 미래도 내다볼 줄 알았지만 돈을 받고 자신(自身)의 지식(知識)을 파는 일은 하지 않는 기인(奇人)이었다.

늦가을 선비는 보던 책을 얼굴에 덮고 깜빡 낮잠에 빠졌다가 목구멍에 끓던 가래에 잠이 깨 문을 열고 가래를 뱉었다.

그 소리에 놀란 까마귀 한 마리가 돌배나무 꼭대기에서 날아오르자 돌배 하나가 떨어졌다.

그때 배나무 아래에서 놀던 동네 아이 중, 여식(女息) 아이가 업고 있던 태어난 지 넉 달밖에 안 된 어린 동생이 정수리에 돌배를 맞고 죽고 말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선비는 독한 술을 마시며 괴로워 하였다.

“인(因), 과(果)!”

씨앗을 뿌리면 싹이 돋아나듯이 과(果)에는 반드시 인(因)이 있기 마련이며, 이 인(因)과 과(果) 사이에는 업(業)이 있다. 즉 原因으로 인한 結果를 말한다.

책을 보지 않았다면 잠도 오지 않았고 눕지 않았으며, 눕지 않았으니 당연히 가래가 끓지 않았을 것이다. 가래가 끓지 않았으니 당연히 가래를 뱉을 일도 없었으며 가래를 뱉는 일로 까마귀가 놀라 돌배나무 가지를 박차고 날지도 않았을 것이다. 돌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어린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을 터인데! 선비는 안주도 없이 독한 소주를 계속 마시며 괴로워 하였다.

그 아이와 나 사이에 무슨 업이 있단 말인가!

선비는 괴로움을 술로 달래며 살다가 죽음이 임박했음을 눈치채고 아들을 불렀다.

“네가 죽기 전에 네 아들(즉 손자)에게 이 봉투(封套)를 전하며 일생일대에 가장 위급(危急)할 때 이 봉투를 뜯어보라 일러주거라.”

이 한마디 유언(遺言)을 남기고 선비는 이승을 하직했다.


세월(歲月)이 흘렀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는 손바닥만 밭 몇 마지기가 전부(全部)라

초근목피로 목숨을 겨우 부지하다가 앞을 가로막은 보릿고개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손자는 동헌(東軒)으로 찾아가 관곡(官穀)을 빌렸다. 관곡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첫해 가을에는 관곡을 갚지 못해 곤장 다섯대를 맞았지만 이듬 해에는 또 빈손으로 가 곤장 열 대를 맞았다.

엉덩이가 피투성이가 돼 한 달을 엎드려 누워 있었다.

문제는 다음 해 “네놈이 이 사또를 희롱하는구나!”

곤장 틀에 묶이기 직전 손자는 할아버지가 일생에 한 번, 위급할 때 펴보라던 그 봉투가 생각이 났다.

어릴 때부터 저고리 안섶 주머니에 넣어 몇 바늘 꿰매서 품고 다니던 봉투였다.

“사또 나으리 이번 곤장에 소인은 목숨을 잃을 것 같으니 제 소원(所願) 한 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안주머니를 뜯어 작은 봉투를 꺼내 유지를 풀고 봉투를 열자, ‘사또는 보시오’란 글이 쓰여 있어 형방이 그걸 들고 계단을 올라 동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또에게 전했다.

사또가 또 한 겹 봉투를 벗기자 ‘빨리 마당으로 내려오시오’ 사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는데 “쾅!”

비가 새서 썩은 서까래 하나가 떨어져 사또가 앉아 있던 의자(椅子)가 박살이 났다.

기절초풍한 사또가 찬물 한 사발을 마시고 일어나 그 봉투의 한 겹을 또 벗기자 ‘내가 사또를 살려줬으니 사또는 내 손자를 살려 주시오.’

이분이 바로 토정(土亭) 이지함 즉 바로 ‘토정비결’을 쓴 그 선비이다.


탁상달(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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