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이 곧 하늘이다.
자연스럽다.
곧 하늘의 뜻대로 되는 것이다.
지구의 대기권에 사는 우리들은 지구의 중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한 삶이다.
그래서 옛 현자들은 심(心) 여(如) 수(水)라 하여 물의 흐름을 도(道)에 비교하면서 마음을 자연스럽게 쓰기를 말하곤 했다.
자연은 지구 대기권만이 아니라 우주의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즉, 생동 천체가 자연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대기권에서 설(說) 한 것들이 다 자연의 섭리로 말한 것뿐이다.
왜 내 몸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더울 때 시원한 물을 맞고자 하면 폭포 밑을 가야 한다.
폭포 위에서는 물을 퍼올려야 물을 맞을 수 있다.
돈이 필요하면 돈 밑으로 가야 돈벼락을 맞을 수 있다.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의 대상보다 나를 낮춰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교만하여 위에 있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만약 거만한 자세로서 평생을 산다면 평생을 힘들게 모든 것을 퍼 올리듯 자기 힘만으로 살아야 한다.
하늘의 도움 없이 말이다.
그러나 겸손하면 자연은 그 어떤 것도 줄 수 있다.
자연과학도 그 자연의 순리를 발견하고 그 뜻을 깨닫는 작업을 하는 공부이다.
유(儒)자들은 이것을 덕성(德性)이라 하고 있다.
오복(五福)의 하나가 유호덕이다.
남에게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울수록 바보로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