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인 / 이어령
나무가 되는 시간
돌의 시간
겨울이 오면
짐승들은 땅속에 숨어
개구리처럼 흙 속에 묻힌
작은 돌멩이가 된다
나무들은 굳어서 돌이 되고
이파리는 쥐라기의 화석이 되고
뒤틀린 가지들은 광맥의 시루켜를 만든다
봄은 꽃, 식물들 것이지만
여름은 소낙비, 동물들 것이지만
가을은 서리, 겨울은 얼음.
광물들의 시간
강물은 흐르다가 돌이 된다
겨울이면 사람들도
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살과 피가 아니라
이빨로 느끼고 등뼈로 생각한다
가장 예민하고 위험한 짐승
시인들도
화강석의 견고한 시간이 오면
끌이나 정으로 언어를 쪼아낸다
석수장이처럼
겨울의 시인들은 삶을 노래하지 않고
파내고 캐낸다
곡괭이를 든 광부처럼
영혼처럼 진동할망정 낙하하지 않는다
늙은 시인은 형용사나 부사를 믿지 않는다
모든 잎이 다 지고 난 뒤
가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나목처럼
심줄만 남은 언어로 늙은 시인은
슬프고 찬란한 시를 쓴다
- 이어령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