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안 되는 날 / 고철
용써도 시가 안되는 날 있다
착한 마음을 만들어 보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날이다
이런 날이면 점심도 아침도 굶기 마련인데
그런데도 안 되는 날이다
저쪽 사람 쳐다보아도
이쪽의 사람 시비를 걸어도
달아나는 택시를 배웅해 보아도
시가 안 되는 날 있다
친구가 꽃 들고 찾아왔다
시 쓰느라고 욕본다며 삼겹살이랑 술도 사주고 갔다
그런데도 안 된다
신경질이 생겨서 뉴스를 틀었다
질문을 받던 죄인이 여기자를 향해 윙크해 줬다
나도 죄인을 위해서 두 번이나 왼쪽 눈을 깜빡거려 주
었다
낼 모레 큰비 온다는데도 시 안 되는 날 있다
동화 한편 보았는데도
깎은 연필을 또 깎아도 졸음 껌 씹어 보아도
시 안 되는 날 있다
무엇을 해도 안 되는 날인데도 저녁을 먹었다
내일은 시가 나를 위해 살아줬으면 좋겠다
- 고철 시집 " 극단적 흰빛 "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