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왕소감문

홈 > 커뮤니티 > 바보들의 수다

바보들의 수다

겨울의 시인

장혜진 좋은글
0 2,103 2024.10.20 15:13

겨울의 시인 / 이어령

​

나무가 되는 시간

돌의 시간

​

겨울이 오면

짐승들은 땅속에 숨어

개구리처럼 흙 속에 묻힌

작은 돌멩이가 된다

​

나무들은 굳어서 돌이 되고

이파리는 쥐라기의 화석이 되고

뒤틀린 가지들은 광맥의 시루켜를 만든다

​

봄은 꽃, 식물들 것이지만

여름은 소낙비, 동물들 것이지만

가을은 서리, 겨울은 얼음.

광물들의 시간

강물은 흐르다가 돌이 된다

​

겨울이면 사람들도

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살과 피가 아니라

이빨로 느끼고 등뼈로 생각한다

​

가장 예민하고 위험한 짐승

시인들도

화강석의 견고한 시간이 오면

끌이나 정으로 언어를 쪼아낸다

석수장이처럼

​

겨울의 시인들은 삶을 노래하지 않고

파내고 캐낸다

곡괭이를 든 광부처럼

영혼처럼 진동할망정 낙하하지 않는다

​

늙은 시인은 형용사나 부사를 믿지 않는다

모든 잎이 다 지고 난 뒤

가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나목처럼

심줄만 남은 언어로 늙은 시인은

슬프고 찬란한 시를 쓴다

​

​

​ - 이어령 시집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중에서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