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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왕자의 난을 보면서

김성룡
0 3,186 2016.09.0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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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왕자의 난을 보면서

 

[생애 초기]

신격호는 1921년 음력 10월 4일에 울산에서 아버지 신진수와 어머니 김필순 사이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신진수는 재력이 있었으나 신격호의 친척에 의하면 "신회장의 선친은 절대 돈 자랑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태어난 울주군 삼동면은 영산 신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유학과 일본 출국]   

1940년에 부산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여 1944년에 졸업했다. 그 뒤 잠시 귀국했다가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한국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다가, 돈을 벌 작정으로 일본에 가기로 결심하고 부관연락선의 밀항선으로 몸을 싣는다. 그는 이때만 해도 온갖 일로 생활을 꾸려가며 작가 지망생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그 꿈을 접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들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처음 일본에서 시작한 것이 껌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때만 해도 배고픔이 먼저였던 전쟁 직후라 주전부리에 불과했던 '껌 사업'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 '풍선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하게 되었다.

 

[한국 진출]   

1966년 이후에는 사업을 대한민국으로 확장하여 그해 롯데알루미늄을, 1967년에 롯데제과를 설립하였다. 그 뒤 한국에서도 사업을 다른 분야로도 확장하여 1973년 호텔 롯데·롯데 전자·롯데 기공, 1974년 롯데 산업·롯데 상사·롯데 칠성 음료 등을 설립했고, 1975년 롯데 자이언츠를 설립, 1978년 롯데 삼강, 롯데건설, 롯데 햄, 롯데 우유, 1979년 롯데 쇼핑, 1980년 한국 후지 필름, 1982년 롯데 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했다. 또한 1978년에는 롯데크리스탈호텔을 건설하였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 머물며 그룹을 경영해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동탑산업훈장과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하였다. 2006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신격호 회장 일가의 재산은 약 45억달러로 세계 136위이다.

 

꼭 현대의 왕자난을 보는 것 같지만 다른게 하나가 있다.

70세에 기업에서 손을 놓겠다던 생각이 바뀌어 90세가 넘도록 그룹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다가 정신건강이 옳지 않은 지금에 와서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정신은 오락 가락하지만 자식형제의 싸움은 인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정치든 사업이든 올라 갈 때와 내려 올 때를 생각지 못한 결과이다.

더 그릇이 컸다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여했다면 형제들의 싸움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형제들의 싸움 같지만 사실 그들을 따르는 임직원들의 줄서기 싸움이라는 것이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욕심을 부려 싸움을 한다면 두 그룹전체가 피를 부른다. 이것은 형제의 싸움이 아나라 욕심많은 참모들의 싸움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꿈을 이루고 나면 인류애에 마음을 써야 한다. 유산상속에 마음을 쓴다면 이런꼴이 되고 만다.

 

우리 바보클럽이 꿈을 먹고 산다면 사유재산에 마음을 뺏기면 롯데와 다를 바가 없다. 자기실현은 하되 인류애를 가진 마무리가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젊은 우리 회원에게 미리 말하고 싶다.

 

한 인생은 사라져도 인류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진리를 알고 일과 사랑과 오락과 기도를 사는 동안 하고 살아야 오복의 마지막 복인 고종명을 한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신격호 회장이 문학을 좋아해 젊은 베르트의 슬품을 읽고 그 감동으로 주인공 롯데를 생각해 롯데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만약 문학도의 길을 갔다면 지금 현재의 지옥은 맛보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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