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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조식선생일대기 1

김동민
0 3,069 2016.08.1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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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조식선생일대기 1


작금에 와서 한국의 지도자들의 간교한 처세에 현 젊은이들의 정신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때,
강국들 속에 한국이 처한 입장이 너무나 어려워 젊은이들의 국가관에 어떤 영향이 미칠 것도 걱정한 차에 문득 조식선생의 말씀과 처신이 생각이나 며칠은 조식선생의 일대기를 다룰 예정이다.
나라 임금님들의 부럼을 받고도 한 번도 벼슬을 한 적이 없는 대학자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며 현세에 그릇이 작은이들이 벼슬을 하겠다고 온 갓 술수를 부리는 이 때 한번 집어 봐야겠다.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 받았으나 한 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조식(曺植)의 자(字)는 건중(楗仲)이며,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다.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 백 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요 몇 일의 명상편지는 바보클럽의 나아 갈 길과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주요한 명상이 될 것이다.

바보클럽.아침.명상편지.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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